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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메로스 일리아스 드디어 다 읽었다.
일리아스는 오딧세이아와 함께 고대 그리스의 문학의 양대 대서사시로 잘 알려져 있다.
일리아스는 이른바 트로이 전쟁을 둘러싼 수 많은 영웅들의 활약과 신들의 세계를 묘사한 작품인데
영화 트로이에서는 목마를 이용해서 그리스군이 트로이를 함락하고 아킬레스가 파리스의 화살에 죽는 내용까지 나오지만,  영화의 원작이라고 할 수 있는 일리아스에서는 아가멤논과 아킬레스의 불화를 다루는 것을 시작으로
아킬레스가 헥토르를 죽이고 난 후 그의 시신을 아버지인 프리아모스에게 되돌려주는 것 까지의 내용이 나온다.


내가 읽은 그리스 문학작품은 니코스 카잔차키스의 [그리스인 조르바] 이후로 이 책이 두번째.
그리고 고대 그리스 문학을 제대로 한번 읽어본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어릴 때 초등학생용으로 나온 고대 그리스신화 책 같은 건 잠깐 읽어본 적이 있지만
거기에 무슨 신이 나오는지 기억도 잘 안날 정도였다.
그냥 제우스가 제일 대빵 신이다 정도로만 기억하고 있는 정도고,
나머지 신들은 이름은 들어봤어도 뭐하는 신인지도 모를 정도 ㅎㅎ
그런데 일리아스를 읽으면서 올림포스의 여러 신들과 인간들과의 관계들을 대략 알 수 있게 됐다.



이 책을 읽게 된 계기로
첫번째로는 예전에 잠깐 다녔던 회사의 실장님께서 읽고 있다고 소개 해주셔서
'실장님도 보시고 있으시고 재밌다니까 나도 한번 읽어봐야지.'
이런 생각을 하게 됐었고,

두번째로는
비슷한 시기에 EBS 라디오에서 지금은 고인이 되신 구본형 선생님과 이희구씨가 진행하시던 고전읽기라는 프로그램을 우연히 알고 청취하게 됐는데, 이 라디오 프로그램은 인문고전 작품을 낭독해주고 쉽게 해설도 해주는 프로그램이었다.
그 때 그 구본형 선생님이 오프닝 멘트로 낭독 해주는거 듣는게 너무 좋았는데.
구 선생님 몸이 아프시다고 방송 하차하시고, 돌아가신 후로 그렇게 편안하고 따뜻하고 깊이도 있게 진행해주시는 분들이 없어서 너무너무 그립다. 어렵다고 생각했던 고전에 좀 더 친숙하게 다가갈 수 있었던 방송이었는데...
 아무튼 거기서 내가 처음 들었던 것이 바로 호메로스 오딧세이아.
책은 읽어보지 않았지만, 방송으로 접했던 오딧세이아는 굉장히 판타지적이고 아름답게 묘사된 구절들도 많았고 무엇보다도 모험이라는 주제가 너무 흥미진진하고 가슴 떨리게 하는 주제였기 때문에, 일리아스부터 시작해서 오딧세이아 까지 꼭 한 번 읽어봐야겠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그 방송에서는 숲 출판사에서 나온 책으로 낭독해주시는 것 같아서
나도 숲 출판사 책을 샀는데 이게 왠일? 자그마치 800페이지가 넘는 두꺼운 책이었다.
멘붕!!!
내가 이렇게 두꺼운 책을 살면서 한 번이라도 통독 해 본 적이 있었나? 없었던 것 같다. -_-
게다가 혼란과 두려운 마음으로 펼쳐본 책의 처음 내용이

"누구의 아들인 누구가 어쩌고 저쩌고
누구의 아들 누구는 어느 지방을 다스리고 있었고
신과 같은 아무개는 누구의 아들이다...."
그리고 계속해서 끝도 없이 이어지는 누구의 아들인 누구가 어쩌구 저쩌구...

뭐 이런식으로 마치 성경 창세기 처음 부분 보는 것 같은 느낌이 들게 해서 내 마음은 점점 혼돈속으로 빠져들고 ㅎㅎ
(옛날에 성경 창세기를 처음 읽을 때도 너무 난감해서 이걸 계속 읽어야 되는건가 하는 생각 했었다.
끝도 없이 누가 누굴 낳았고 그 누구는 또 다른 아무개를 낳았고 이런 내용의 나열이니까.)
이게 왜 중요한지도 모르겠고 내가 이걸 왜 읽어서 알아둬야 하는거야!? 심드렁한 생각이 들기도 했다.
책을 읽으면서 분노와 반항적인 마음이 생기다니...
지금 생각 해 보면, 아마도 고대의 사회에서는 족보와 혈통을 매우 중요하게 생각했던 모양이다.
장수들이 1:1 로 싸울 때도 서로 자기는 누구의 자손이고 내 아버지는 누구의 아들이고 이런걸 미주알 고주알 소개하기도 한다.
아무튼 나는 또다시 혼란에 빠져서 왠지 모르게 처음부터 지레 겁먹고 이거 엄청 재미없고 숨이 턱 막힐 것 같은 기분이 들었던듯 함... -_-
게다가 이건 내가 라디오에서 들었던 오딧세이아에 나오는 것 같은 모험 얘기는 커녕 끔찍한 전쟁 얘기만 나오니...
당연히, 이 책은 트로이 전쟁 얘기를 다룬 책이었으니까...^^
그래도 한 번 읽기로 했으니까 끝까지 해 봐야지 하고 꼼지락 꼼지락 몇 개월씩이나 걸려 드뎌 다 읽은 나 ㅎㅎ
어렵사리 통독 한 번 한 것으로 만족하고 있고 뿌듯하다 ㅎㅎㅎ


너무 막막한 느낌부터 받았던 나머지 첫 부분을 읽어 넘기는게 어려워서 오래 걸렸는데,
역시 책은 초반 부분만 잘 읽어넘기면 그 다음 부분은 어느정도 탄력이 붙어서 읽어지게 되는 듯 하다.
읽어가다보니 어느 정도 생소하게 느껴졌던 문맥들도 적응이 되고, 읽으면서 다음 내용이 궁금해지면서 계속 읽게 됐었다.

또 이 책에서 고대 그리스의 청동 무구들, 창과 방패에 대한 묘사들이 많이 나오는데,
머릿속으로는 이게 어떤 모습일지 상상을 해봐도 딱히 어떤 이미지가 떠오르진 않아 이것들이 어떻게 생긴것인지 궁금했었다.
그래서 영화 트로이를 중간에 보게 됐는데 그걸 보고 '아 대충 저런 이미지겠구나.' 했다.
그렇지만 책에서는 가죽 + 청동소재로 된 무구들에 대한 묘사가 많이 나오는데
영화 트로이에서는 검은 가죽 소재로 보이는 갑옷들을 입는 걸로 나옴.하지만 그런대로 나름 그때의 창과 병기들 전차와 갑옷의 모습 등을 대강이나마 이해 해볼 수 있었던 것 같았다.




그리고 책을 읽으면서 느꼈던 점은 고대 그리스 사회는 전쟁이 빈번했던 만큼 용맹함을 미덕으로 여기고 명예를 추구하는 사회가 아니었을까 짐작이 됐고, 남성중심의 사회였고 여성의 지위가 낮았던 것 같다.
책 내용 중에 아킬레우스가 자신이 아끼던 전우가 죽어 그를 위해 장례경기를 치뤄주는 장면이 나오는데
그 중 한 종목인 레슬링 경기를 주최할때 이런 대목이 나온다.

[곧 이어 펠레우스의 아들은(=아킬레우스) 고통스런 레슬링 경기를 위해
세 번째로 상품들을 내놓으며 다나오스 백성들에게 보여주었다.
이긴 자를 위해 그는 불 위에 거는 큰 세발솥을 내놓았는데
아카이오이족은 자기들끼리 이것에 소 열두 마리 값을 매겼다.
지는 자를 위해 그는 여러 가지 수공예에 능한 여인을 가운데로
데려오게 했는데 그들은 이 여인에 소 네 마리 값을 매겼다.]

여인의 가치가 세발솥의 하나의 가치보다 못하다니. 너무 슬프다. ㅠㅠ
고대 그리스 남자들은 여자를 소유물이나 재산쯤으로 여겼나보다. 흥.
하지만 그 때 여자 무시했던 남자들은 그 업보로 지금쯤 환생해서 마누라한테 바가지 긁히면서 살고 있을지도 모를 일.
후후후;;



책에 나오는 내용 중에 일리아스 특유의 독특한 표현들도 재미있었다.
예를 들면 아테네 여신이 전사에게 축복과 힘을 내려주는 모습을 설명할 때는

[그의 가슴속에 파리의 대담성을 불어넣었다.]
라고 한 것.

많고 많은 생명체 중에 하필 파리라니.
부연 설명을 읽어보면 그럴싸하긴 하다.
[파리란 녀석은 사람의 몸에서 쫒기고 또 쫒겨도 계속해서 물려고 덤비니 파리에게는 사람의 피가 달기 때문이다.
그러한 대담성으로 그녀가 그의 검게 물든 마음을 가득 채우자 그는 파트로클로스 쪽으로 달려가 번쩍이는 창을 던졌다.]

ㅎㅎㅎ
파리란 그저 귀찮고 성가신 가치없는 잉여 해충 정도로만 생각하던 나에게,
파리의 용감한 대담성의 일면을 깨우쳐준 일리아스....
앞으론 파리를 볼 때 그 녀석의 용감무쌍함도 생각하게 될까?

또 사람의 죽음을 묘사할때의 몇 가지 표현들도 흥미롭다.
[...무릎을 꿇었고 검은 구름이 그의 주위를 덮었다.]
[혼절한 그의 두 눈을 어둠이 덮었다.]

이성을 잃었다고 표현 할 때는
[그의 두 눈에 안개가 쏟아졌다.]

장수가 상대편 장수에게 물러가라고 위협할 때는
[내 그대에게 타이르노니. 군사들 속으로 물러가고 나와 맞서지 마라! 변을 당하기 전에, 일이 벌어진 뒤에는 바보도 영리해지는 법이지.]
이런 몇 가지 반복해서 나오는 표현 패턴들이 좀 있는데, 이걸 이렇게도 표현할 수도 있구나 싶었다.



그리고 또 한 가지 흥미있었던 점으로는, 인간들의 싸움에 인간들만 나오는 것이 아니라
올림포스의 신들까지 엮여서 끝까지 전쟁에 관여하고, 직접 영향을 주고 받는다는 것이었다.
영화에선 그저 역사적인 인물들이 나와서 전쟁하는 것만 나와 있고 전쟁의 원인이 트로이의 왕자 파리스와 절세 미녀 헬레네 때문인 것으로 나오지만,
책을 읽으면서 해설을 보다 보면 이 전쟁의 발단은 근본적으로 그 두 사람 때문이 아니라, 바로 여신들 때문에 비롯 된 것이라는걸 알게 된다.
 아킬레우스를 낳게 되는 펠레우스와 바다의 여신 테티스의 결혼식에서 홀로 초대 받지 못한 불화의 여신 에리스가
자신이 초대 받지 못했다는 것에 앙심을 품고 그 곳에 모인 신들 사이에
'가장 아름다운 이에게' 라는 글자를 새겨 넣은 황금 사과를 던지는데, 여신 헤라와 아테네와 아프로디테가 서로 그 사과는 자기 것이라고 주장하게 되고 결국 인간들 중에 가장 잘생겼다고 알려진 트로이의 왕자 파리스에게 심판 해달라고 찾아간다.
 그리고 파리스에게 세 여신들은 각각 자신을 지목해 준다면 그에 보답하는 어마어마한 댓가를 주겠다고 약속 하는데
파리스는 여자를 좋아하는 사람이었는지 절세미인을 아내로 주겠다고 한 아프로디테를 찍은 것.
그래서 아프로디테는 그리스의 왕 아가멤논의 아우인 메넬라오스의 부인이었던 헬레네를 파리스와 맺어주게 되는데.
헬레네가 남편인 메넬라오스를 떠나 트로이의 파리스에게 가버리는 바람에 그리스의 대연합군이 트로이에 쳐들어와서
트로이 전쟁이 일어나게 된 것.
 또 파리스에게 지목받지 못한 헤라와 아테네 역시도 트로이에 앙심을 품고 전쟁에서 그리스군을 도와주고 지원하게 되고, 반대로 아프로디테를 비롯한 몇몇 신들도 트로이의 편에서 트로이군을 도와주게 되면서
신들끼리도 전쟁에 참가해서 서로 싸우고 다치기까지도 한다.
신들의 아버지라는 제우스도 트로이의 헥토르가 자신에게 제물을 많이 바쳤다는 이유로 헥토르를 사랑하고 아껴서
트로이군을 많이 도와주게 된다.
뭔가 신답지 않게 공명정대하지 않고 편파적이고 이기적인 것이 너무 인간적인 신들인 것 같아 흥미진진하고 웃기기도 했다.


이런 것들을 읽으면서 그리스의 신들은 어떤 신이 있고 어떤 일화가 있는지도 대략 알게 되서 좋았고,
그리스 신화나 다른 그리스 문학도 더 자세히 찾아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게 됐다.
그리스 문명과 문화에 대해서도 관심이 생기게 됐고.
다만 이 책은 전쟁 이야기인 만큼, 사람이 죽는 모습이 너무 적나라하게 표현되는 부분들이 많이 나와서 좀 잔인하기도 하다.
다음번엔 오딧세이아도 구해서 읽어보고 싶다.
그 책이 왠지 더 재밌게 읽혀질듯하기도 하고.
이 두꺼운 책을 어떻게든 한번 읽고 나니, 다른 왠만한 책들은 좀 쉽게 읽혀지는 기분도 살짝 든다. 헤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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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4/25 18:21 2016/04/25 18:21